손정천


환영하는 것들

Welcoming Matter


@Artlogic Space

2024. 9. 3. ~ 9.8.





일시 : 2024. 9. 3. ~ 9. 8.
장소 : 아트로직 스페이스(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윤보선길 28)  

Date: September 3, 2024 - September 8, 2024
Location: Artlogis Space (28 Yunboseon-gil, Anguk-dong, Jongno-gu, Seoul)

1.
구겨진 민트향 가글통, 달그락거리는 흰색 선풍기, 32도의 여름바람, 부러진 나뭇가지, 금전수를 품었던 흙과 돌, 젖은 채로 엉겨있는 종이박스였던 것들,
못이 나와있는 나무의자 두 쌍, 전봇대에 기대 서있던 대걸레자루, 사바나 7080 라이브클럽의 간판

2.
길거리에 두서없이 쌓여 있는 사물들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애써 머물진 않지만 기어코 따라다니는, 쓸쓸하고 황홀한 풍경들. 
‘지금의 나는 왜 이런 것들에 끌리나.’ 길거리 보도 블럭 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매일 만나 솔로 닦아준다는 사람의 글을 최근에 읽게 되었다. 
나도 어쩌면 어떤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다만 내가 조금 더 관심 있는 것은 매끈하고 온전하기보다는 다소 훼손되거나 혹은 언제든 쉽게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게서 영원성을 느낀다. 쉽게 변하고 당장 부서지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들. 판단 중지의 영역에 있는 것들. 
어떤 형태로든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들. 나보다도 더 오래 존재할 것들. 나를 다소간 놀랍게 하는 것들.

3. 
사물 풍경에 대한 기억과 느낌은 나의 작업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재발견된다. 찢어진 폐기물 마대자루,
물감, 흙먼지, 비닐, 물풀 등의 재료는 기억과 느낌의 흔적처럼 화면에 흩어지고 쌓인다. 나에게 마대자루는 단순히
회화를 얹는 캔버스가 아니다. 그것은 정해진 형태가 없는 하나의 사물이자, 이질적인 존재들이 밀접히 연결되면서
도 대립하며 공존하는 연합의 장(場)이다. 마대자루는 찢어졌지만 안-밖, 인간-비인간의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오
히려 더 넓은 세계를 품을 수 있게 된다. 물감을 포함한 여러 사물들은 마대자루와 함께 다양한 위치에서 울퉁불퉁
하게 배치되고, 또 재배치된다. 사물이 가진 생명력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의 눈과 손을 밀고 당기며 중구난방
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낸다. 이렇게 난데없어도 괜찮은지, 모호해도 괜찮은지, 너덜해도 괜찮은지, 이해되지 않아
도 괜찮은지.
“어서 오세요. 제각기, 환영합니다.”

4.
배척과 혐오가 만연한 세계에서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와 같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흔히 가게 앞 손님맞이 멘트나 신입생 환영, 아파트 입주 환영과 같은 상황에서 쓰이는 이 말들이,
 오히려 특정 집단과 구별되는 ‘당신의 특별함’을 환영하면서, 그 이외의 것들을 배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느꼈다. 
‘환영하는 것들’이라는 전시 제목에는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너저분하고 정리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억과 느낌,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그들을 환영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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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작업물 중 하나 옆에 가위를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직접 그 작업물을 잘라 가져갈 수 있는 경험을 제안한다. 
관객들이 이 제안에 얼마나 참여할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그 과정과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재밌는 발견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걸 만지고 자를 수 있습니다. 갤러리에 걸려 있다는 이유로 이것이 조금이라도 특별해 보인다면 자른 것을 가져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 헐렁한 것들이 길거리에 널부러져 있어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남겨진 것들과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들이 각각 어떻게 될지 역시 예측할 수 없습니다만,
제각기, 환영합니다.” - 손정천, <환영하는 것들>에 앞서 덧붙이는 말